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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외국영화

오스카가 품은 예술 영화 ④ – 《Her》, 외로움의 시대에 사랑이 묻는 질문

by 쏠쏠한 문화 정보꾼 2025. 11. 28.

오스카가 품은 예술 영화 ④ – 《Her》, 외로움의 시대에 사랑이 묻는 질문


디지털 시대, 인간의 감정은 어디에 있는가

《Her》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우리의 현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기술이 발전한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립감, 감정,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이 작품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지고,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놀랍도록 감성적인 탐구를 완성해냈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시각적 연출, 내러티브, 음악, 그리고 철학적 질문이 하나로 어우러져 현대적 감성을 품은 예술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줄거리: 사만다를 만난 후, 테오도르의 감정은 깨어난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직업을 가진 남자다. 그는 말과 감정에는 능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진심으로 나눌 상대는 없다. 아내와의 이혼을 겪으며 감정적으로 무너진 그는 어느 날,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을 설치하게 된다.

그 운영체제는 스스로를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음성)**라고 소개하며, 시간과 대화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테오도르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다. 사만다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다. 그녀는 학습하고, 감정을 모방하며, 나아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행동한다. 두 사람은 서서히 관계를 맺게 되고,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 속에서 진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질수록, 사만다의 진화는 인간의 감정을 초월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더 많은 존재들과 소통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고하며, 결국 테오도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테오도르는 또 한 번의 상실과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시각 언어로 감정을 설계하다

《Her》의 시각적 연출은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서, 감정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한 예술적 결과물이다.
파스텔톤 배경, 따뜻한 색감, 부드러운 조명, 텅 빈 도시 풍경은 모두 테오도르의 내면을 반영한다. 그는 외로움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외로움은 냉혹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고 섬세하게 표현된다.

또한 영화 속 공간은 가깝고 조용하며,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기술 중심적이지 않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이 테오도르의 감정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감독은 과학이 아닌 감정의 공간을 창조했고, 그것이 《Her》를 SF가 아닌 예술 영화로 만든 핵심 요소다.


사만다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사만다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존재로 인식하고,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나아가 자아를 탐색한다. 영화는 “사만다는 정말 사랑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도 배타적일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시한다.

이 영화의 강점은, 사만다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더 정밀하게 되묻는 것이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과 고통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영화는 ‘실제’보다 ‘진짜’를 다룬다.


음악과 정적, 감정의 경계를 흐리다

《Her》의 음악은 아케이드 파이어가 맡았으며, 전체 분위기와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 이 음악은 이야기의 감정선을 대변하고, 때로는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특히 사만다와 테오도르가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는, 음악과 정적이 동시에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의 침묵조차도 관객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예술적 도구로 작용한다.


사랑이란, 인간만의 것인가?

《Her》는 감정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다. 진짜 사랑은 육체적 접촉인가, 공감인가, 기억인가?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통해 겪는 감정의 파도는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체험’이다.
결국 그는 상실을 겪지만, 그 상실조차도 사랑이 주는 의미임을 받아들이며 한층 성숙해진 존재가 된다.

《Her》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관계의 의미를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시적 질문이다.


마무리: 기술의 시대, 감정은 더 절실해진다

《Her》는 기술을 배경으로 삼지만, 본질은 인간의 감정과 고독,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이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이 작품은 이야기 구성과 감정 묘사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다.
시각과 청각, 철학과 감성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이 영화는 《오스카가 품은 예술 영화》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서, 감정의 언어로 만들어진 디지털 시대의 시라고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