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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외국영화

오스카가 품은 예술 영화 ⑤ – 《1917》, 전쟁의 시간을 한 호흡으로 그려내다

by 쏠쏠한 문화 정보꾼 2025. 11. 29.

 

오스카가 품은 예술 영화 ⑤ – 《1917》, 전쟁의 시간을 한 호흡으로 그려내다

영화가 ‘시간’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가?

영화는 본래 시간의 예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시간을 잘게 자르고 편집하여 사건을 구성한다.
그러나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이와 정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그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단 한 번의 컷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듯한 '원컷 영화'를 연출하며, 관객이 인물과 함께 숨 쉬고, 달리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전쟁의 참상이 아니다. 이 영화는 시간과 생존, 인간의 결단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예술적 실험이자, **전쟁 속 인간성의 깊이를 조명한 영상 시(poetic cinema)**다.


줄거리: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영화의 시간은 1917년 4월 6일 하루, 단 하루다.
두 영국 병사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는 한 가지 임무를 맡는다.
독일군의 전략적 철수로 인해, 영국군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는 적의 함정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1,600명의 병사들이 다음 날 아침 공격을 감행할 예정이고, 그들을 막지 못하면 전원 몰살당할 수 있다.

이 둘은 12시간 안에 전선 깊숙한 곳까지 이동해 공격 중단 명령서를 전달해야 한다.
임무는 단순하지만, 그 여정은 참혹한 시체 더미, 폭격 흔적, 지뢰밭, 적의 매복 등 끊임없는 공포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블레이크는 자신보다도, 전선에 있는 형을 구하기 위해 이 임무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여정 중 그마저도 전사하고, 스코필드는 혼자 남아 사명감을 이어간다. 영화는 결국 그가 적진을 돌파해, 살아남은 자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는 순간까지를 끊기지 않는 하나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전장의 시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끊김 없는 카메라 워킹’이다.
실제로는 여러 개의 숏을 정교하게 연결한 것이지만, 관객의 눈에는 온전히 하나의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듯한 흐름으로 보인다.

이 연출 방식은 단순한 기술적 도전이 아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관객이 인물과 함께 걸으며 공포와 피로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은 여기서 비롯되며, 전쟁의 리듬과 시간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은 이 작업으로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에 빛났으며, 그 조명과 카메라 이동의 정교함은 영화적 공간 구성의 예술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침묵, 소리, 빛 – 전쟁을 구성하는 감각들

《1917》은 과잉된 폭발이나 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과 주변음, 절제된 사운드 디자인이 인물의 심리와 공간의 압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한 장면에서는 밤의 폐허 속을 혼자 뛰어가는 스코필드를, 하늘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불빛만으로 조명한다.
그 장면은 마치 전장의 악몽을 그린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감각을 최소화하면서도 최대의 공포와 긴장을 이끌어내는 이 방식은 전쟁을 감정의 레벨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1917》은 전쟁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투 장면보다 인물의 눈빛, 호흡, 선택에 더 집중한다.
이 영화는 “누가 적인가”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를 묻는다.

결국 혼자가 된 스코필드는 수많은 상실을 겪고도 끝까지 전진한다.
그가 마지막에 도달한 공간은 단순한 사령부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자들이 기다리는 자리’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희망이다.
그가 명령서를 전한 덕분에 1,600명의 병사가 목숨을 구하게 된다는 사실은, 하나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를 말없이 증명한다.


마무리: 기술과 감정이 만나는 새로운 전쟁 영화의 정점

《1917》은 영화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동시에, 그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연결되었을 때 어떤 예술적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단순히 ‘원테이크’라는 형식을 넘어서, 그것이 서사의 리듬과 감정의 선율을 완벽히 구현한 사례이며,
따라서 이 영화는 《오스카가 품은 예술 영화》 시리즈의 다섯 번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917》은 전쟁을 주제로 하되,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를 위해 달리는 한 사람, 그 발걸음의 무게와 진심은 지금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요약 정보

  • 제목: 1917
  • 주요 수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 형식: 원컷 영화 (one-shot)
  • 주제: 인간성과 생존, 선택과 책임
  • 시각/청각 예술성 극대화